타이베이여행 : 대만일본군'위안부'역사를 볼 수 있는 아마의 집 _ 평화와 여성인권박물관 (AMA Museum)
<아마의 집 : 평화와 여성인권박물관>은 대만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박물관이다. 아마(AMA)는 대만원주민 언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단어다. 우리나라의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나 일본의 <WMA>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박물관이다.
대만의 여성단체 Women's rescue foundation 은 원래 미혼모 등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였는데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만의 '일본군위안부' 아마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활동지원 및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고 1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6년 '아마의 집'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마의집은 다통지구에 위치해있다. 디화지에라고 불리는 이 곳은 옛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이다. 전통약재와 건어물, 건과일등을 파는 거리이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가게들도 많다.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소품을 파는 곳이 딱 내 취향이었는데 일본인 관광객도 많았다. 왕골가방 등은 일본에서도 인기있는 아이템인가보다. 일본 관광객들이 다들 왕골가방 쇼핑 삼매경. 박물관에 머무르는 동안 일본인이 한명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 좀 슬픈 일.
아마의 집 입구이다.
1층에는 카페와 기념품을 파는 곳이다. 아마의 집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2층에서 열리는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는 관람료를 내야한다. 지금 하고 있는 특별전은 홀로코스트 피해자 안네와 관련된 전시이다. 입장료가.... 학생과 교사할인이 따로 있고 일반이 따로 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일반 입장료가 100위안 이었던 것 같다.
전시관 건물로 향하는 길.
일본제국주의 당시 대만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늘 한국의 모습만 보다가 다른 나라의 모습을 보니 새로웠다.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시선이 멀리까지 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여기에서 잠깐 했다.
여기가 전시관 입구이다.
왼쪽이 문처럼 보이는데, 오른쪽 책장이 2층 안네프랑크전을 볼 수 있는 비밀의 문이다. 실제로 안네프랑크와 그의 가족들이 숨어 지내던 곳의 입구를 재현한 것이다. 저 문을 열면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올라가서야 전시를 볼 수 있다.
처음 마주하는 전시는 당시 독일을 비롯한 유럽지역의 상황이다.
독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쟁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들의 전쟁과 홀로코스트는 어떻게 진행되게 되었는지 사진과 짧은 글로 설명되어있다. 역사는 어떻게 개개인의 삶을 흔들고 파괴하는걸까.
그리고 <안네의 일기>에서 발췌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1층에는 대만의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지였던 대만 역시 전쟁기간 동안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으며 그 수는 최소 2,000명이라고 한다. 한국에 비해 적다고 말하지는 말자. 국가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300,000 만명의 '여성'들이 피해자로 추산된다.
위안소의 모습들.
일본정부는 일본군'위안부'와 위안소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군대가 머물렀던 곳에서 체계적으로 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군'위안부'로 끌어내기 위한 방법은 일자리 알선, 각 마을의 브로커, 경찰이나 관에 의한 권유나 협박 등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간호사로 취업시켜주겠다는 말에 군을 따라나선 할머니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뭉클하게 다가오는 할머니들의 말.
콘돔과 크림.
전쟁물자가 부족해짐에 따라 콘돔도 부족해졌고, 콘돔을 씻고 재사용하기도 했지만 크림도 사용했다고 한다. 성병방지를 위한 크림
아마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 코너.
할머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본군'위안부'가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과 할머니들 개개인의 꿈과 소망에 관한 전시다. 한국의 할머니들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한 모습을 보고 대만의 할머니들도 부러워해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 찍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Iyang Apay 할머니는 1929년, 17세에 마을 주변에 주둔하는 일본군대에서 낮에는 빨래와 요리를 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일본군'위안부'로 고통을 당했다. 420일간 이어졌고 전쟁이 끝난 후에 4번의 결혼을 했다. 그 모든 결혼이 이혼으로 이어진 이유는 남편이 할머니의 과거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늘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악몽과 트라우마로 힘든 세월을 보내고 지금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꿈은 공무원. 공무원으로 하루동안 살아보는 할머니의 사진이 보인다.
이 할머니의 꿈은 스튜어디스. 중화항공의 스튜어디스로 변신한 할머니의 모습.
3층 전시관.
3층에는 안네프랑크와 할머니를 연결지은 전시가 있다.
" 안네 프랑크는 비밀의 방에서 숨어살았던 유대인이며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다. 아마는 위안소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다.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탈출했지만 사회의 낙인이 여전히 아마들을 쫓아다녔다. 이 박해받은 삶의 두 이야기가 우리의 반성을 불러일으키는가? 우리는 이 이야기와 관련해 어떤 입장에 설 것인가?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
-전시 내용 중
이 곳은 커뮤니티 공간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사람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한 켠에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판넬로 전시되어 있고 자세한 내용도 볼 수 있다. 가슴을 빨갛게 칠한 그림에서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빨간 것은 불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공간에서는 다양한 책도 볼 수 있는데, 회의를 하고 있어서 책 근처에는 가보지 못한게 조금 아쉽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유대인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과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시관의 마지막에서도 유대인홀로코스트피해자와 아마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
들어갈 때는 비가 조금 왔는데, 나올 때는 개었다. 일제시대의 옛건물들이 나에게는 근사하게 보였다. <아마의 집>은 90년 전에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이 근처의 집들이 다 이렇다. 오래된 거리와 오늘. <아마의 집>과 관광객. 조금 괴리가 느껴졌던 하루.
서울에 있는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느꼈던게, 서울의 그 곳이 현재까지 좀 더 탄탄하게 잘 이어졌다는 느낌? 물론 전시만 봐서 그렇다는 말. 서울에서는 한국의 '위안부'할머니들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피해여성들을 돕고 있고 평화운동의 동력까지 볼 수 있었고 진상규명을 위한 활발한 활동까지 볼 수 있을 정도의 전시규모였는데 대만의 <아마의 집>은 그런 것들을 전시에서 잘 볼 수는 없었다. 중국어를 잘한다면 거기에 있는 책들을 통해서라도 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 (찾아보니 일본소송, 아프가니스탄 전쟁피해여성 지원 등 다양한 활동도 한다고 한다) 전시만 봐서 그렇다는 말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같은 시기에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박물관에 머무는 동안 관람객은 오로지 나 한 사람이었다. 안네프랑크 전시도 좋았고, 대만의 아마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주소
No. 256號, Section 1, Dihua St, Datong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3
월요일은 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