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식당칸 탐방 _ 둘째날, 그리고 먹던 기록들

어디로갈까? 2018. 1. 1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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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않은 덜컹거림 때문인지 일찍 깨어났다. 창문에 빗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비가 오고 있다. 러시아에서 처음 맞이하는 비이다. 비가 오는 날 타는 기차는 꽤 낭만적이다. 창문에 맺힌 빗방울에 사물의 상이 희미하게 맺히면 그 것만큼 묘한 것도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밤에 오는 비가 참 멋있다. 자동차의 라이트가 빗방울에 반사되어 여러가지 빛을 낸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머릿 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다 잊혀진다. 그래서인가. 비는 참 좋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참 좋고.

 

 

시베리아는 온통 숲과 어둠뿐이니 자동차의 조명따위가 빗방울에 맺힐리는 없겠지만 희미해진 창에서 바라보는 바깥풍경도 나쁘지는 않다. 더군다나 자작나무들이 물기를 흠뻑 머금고 뱉어내는 색깔이 진해서 감탄하게된다. 비를 잔뜩 머금은 자작나무 숲도 참 매력이 있다.

 

 

깨어보니 하바롭스크역이다. 이 곳 또한 고려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강제이주를 당하기 전까지 많은 고려인들이 살고있던 곳이기도 하고 많은 독립운동가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곳이다. 이동휘와 김알렉산드라는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동휘선생이야 워낙 많이 알려져있지만 사실 한인 최초의 사회주의자였던 그녀의 행적은 많이 알려져있는 편은 아니다. 독립을 위해 볼셰비키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동휘선생과는 다르게 김알렉산드라는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다. 하바롭스크의 당건물에도 김알렉산드라의 부조가 새겨질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회주의자였지만 러시아 내전에서 백위군에 의해 하바롭스크시가 점령당하게 되고 그 때 총살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카프(조선프롤레타 예술가동맹)의 작가였던 조명희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일까? 역시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스탈린문학상을 받았던 작가이다. 소련작가동맹의 간부이기도 했다. 강제이주를 당하기 전에 일본간첩의 누명을 쓰고 총살 당하였다. 작가 조명희의 기념비가 블라디보스톡에 세워져있고 그의 기념실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나보이문학관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셰익스피어인 나보이를 기리는 문학관에 우리조차 잘 알지 못하는 고려인작가 조명희의 기념실이라니. 아무튼 이 것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리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이 곳을 지나니 기분이 괜스레 이상해진다. 더군다나 비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멈추지않고 계속 달렸고 배꼽시계가 요란해졌다. 그래, 생각도 뭐도 일단 먹어야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레스토랑칸에 대한 부푼기대를 안고 객차를 넘어 레스토랑칸으로 걸어갔다.

 

 

 러시아어로 읽으면 레스토랑. 시베리아의 횡단열차의 수많은 객차 중 한 칸은 이렇게 식당칸이 있다. 모든 기차에 다 있는 것은 아니다. 블라디보스톡-모스크바구간에는 있었지만 노보시비리스크-알마티 구간에는 식당칸도 없었고 객차도 6량인가 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레스토랑이라고 씌인 객차는 그 객차 전체가 식당칸이다. 그 안에 조리실도 있고 테이블도 여러개 있고 주전부리도 판매한다. 고기나 감자가 든 빵은 직접 만들어서 파는데 60루블 정도에 사먹을 수 있다. 나머지 끼니가 될 만한 식사는 메뉴판에 나온대로 판매한다. 영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지만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음식은 파스타(마카로니)와 생선알이 들어간 샌드위치. 음식은 대체적으로 비싼편이다. 300루블에서 400루블이면 한 끼식사를 할 수 있지만 넉넉한 양은 아니다. 음료 등은 따로 주문해야된다.

 

 

 

 

 

이렇게 예쁘게 테이블이 세팅되어있다.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영어는 안통한다..러시아어를 조금 배워두면 유용하기는 하지만 영어로 된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면 알아서 주문을 잘 받아주기는 하더라. 간혹 없는 메뉴를 주문해도 뚝딱 만들어준다. 쁠롭 (기름진볶음밥)은 메뉴에 없었지만 우수리스크에서 까챠할머니와 묵따발할머니가 만들어진 쁠롭을 먹었던 아이들이 주문하자 만들어주었다. 맛은.. 그냥 메뉴에 있는 음식 주문하고 먹는 걸 추천하고 싶다.

 

 

안 쪽으로 조리실이 보인다. 그리고 앞에 만들어서 파는 빵.

 

 헝가리안소세지와 감자

 

 그리고 치킨커틀릿.

 

 

 

정말 양이 무지막지하게 작아서 처음에는 너무 실망했다. 내가 이 객차에서 제일 좋아했던 음식은 치킨커틀릿이었다. 그냥 치킨까스. 짭쪼름해서인지 내 입맛에 꼭 맞았는데 흰 쌀밥이 얼마나 그립던지. 같이 먹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이렇게 한 접시 나오는게 전부이다. 그래도 기차생활을 하다보니 나중에는 소화가 잘 안되어서 이 정도 음식을 먹어도 충분하긴 했지만 남자떠별들은 이 음식으로는 간에도 안차는지 5루블짜리 빵를 열개, 스무개씩 주문하고 흡입하곤 했다.

 

 

샌드위치.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저렇게 식빵을 반으로 쪼개서 준다.ㅠㅠ 빵을 주문해도 마찬가지이다. 흘렙(빵)을 주문하면 저렇게 반쪽씩 판다. 매정한 사람들. 우리는 위대한 나라에서 온 위대한 대한민국사람들인데. 어쨌든 소세지가 얹혀진 샌드위치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러시아사람들은 좋아죽는 생선알이 들어간 저 샌드위치는 한국사람들이 먹기엔 참 고역인 음식이다. 생선알 하나 먹고 저 샌드위치를 시베리아벌판으로 집어던질뻔했다. 짜고 비리고 짜고 비리고 짜고 비린맛. 아무튼 정말 짜고 정말 비리다. 러시아 사람들은 고급음식으로 쳐준다. 그래서인지 샌드위치 중에서도 가장 비싼 음식이다. 러시아 음식문화를 몸소 체험하고 싶다면 말리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짜고 비리고 짜고 비리고 짜고 비리다.

 

 

 

 

러시아 수프 보르시이다. 보르시를 너무나 사랑하는 나라답게 여러 종류의 보르시가 있다. 나는 기름진 국물을 별로 안 좋아해서 시켜먹지는 않았지만 시켜먹는 사람들은 모두 만족했다. 추운 나라이니 국물 요리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열량을 더하기 위해 마요네즈를 듬뿍 뿌려서 휘휘 저어서 먹곤한다. 비쥬얼만큼 맛이 나쁘지는 않다. 딱 이 나라에 필요한 음식이고 필요한 맛이라고 생각한다. 흘렙(빵)을 주문해서 보르시에 찍어먹기도 한다. 연한 김치국물맛이 나기도 한다.

 

 

 

이 것은 내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복숭아쥬스. 한 잔 시켜먹는 것보다는 이렇게 한 팩을 시켜먹는게 더 이득이니까 언제나 한 팩 시켜서 꼴딱꼴딱. 쥬스의 종류는 참 다양한데 나는 이 복숭아맛이 제일 좋다. (하트)

 

 

대망의 파스타. 마루는 이 파스타를 시켜서 좌절을 했고 나는 웃겨서 죽을뻔했다. 메뉴에는 파스타라고 씌여져 있었고 삶은 마카로니 뭐 이렇게 설명이 있었다. 설마 마카로니만 나올까 했는데 정말 어떤 양념도 없이 딱 삶은 마카로니를 갖다주었다. 이 마카로니를 먹던 마루가 결국엔 케찹을 주문해서 케찹에 찍어먹어야만했다. 정말 순도 100%마카로니 파스타. 참고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식당칸에서는 케찹이나 마요네즈를 주문해도 돈을 받는다. 쬐끔 주면서 5루블이었다. 아무튼.. 이건 정말 충격이었다. 정말 삶은 마카로니를 갖다주었어.... 원래 서양인들은 이렇게 삶아진 마카로니만 아무 뭣도 없이 먹는건가? 그래도 가격은 다른 음식에 비해 저렴했다.

이 밖에도 물만두를 팔기도 한다. 한국의 물만두와는 다르게 만두피가 두꺼워 밀가루 맛이 더 나지만 그래도 먹을만하다. 샤슬릭이라는 꼬치구이도 팔지만 가격에 비해 양이 터무니없이 작다. 물을 사먹어도 돈을 내야된다. 어쨌든 이 식당칸에는 공짜는 없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컵라면이나 다른 음식들을 싸가지고 온다. '도시락'이라는 러시아의 컵라면은 (물론 한국의 도시락의 모델로 이름까지 똑같다.) 러시아 사람들이 참 즐겨먹는 라면이다. 신라면을 사랑하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좀 심심할지 모르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따뜻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일회용 감자분말을 팔기도 한다. 그냥 거기에 물만 부으면 삶은 감자 으깨어놓은 것처럼 변한다. 이건 정말 획기적인 식품이라고 생각한다. 쫌 짜긴 하지만.

 

 

 

 

이게 바로 감자분말. 인스탄트식품을 안좋아하고 안먹기는 하지만 인스탄트식품의 천국 대한민국에 온 사람으로서 이런게 한국에 없다는 사실에 조금 자존심이 상할뻔 할 정도로 신기했던 음식. 배가 고파서 먹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는 줘도 안 먹을 음식이긴하다. 인스턴트의 천국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국에서 파는 인스턴트 미역국, 떡국, 누룽지 등등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팔면 정말 잘 팔릴 것 같긴하다. 카레도 유용하다. 비닐팩을 준비해서 뜨거운 물을 넣고 카레를 투척한다음 데워서 먹으면 된다. 인스턴트를 정말 싫어하는 나이지만 카레는 정말 미친듯이 부럽더라. MSG의 향이 솔솔 나기 시작하면 정말 ㅠㅠ 아, 햇반도 참 유용하다.

 

 

 

이런 것들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기차가 잠깐 정차하는 역마다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음식을 팔기도한다. 빵이나 삶은계란, 삶은 감자등을 살 수도 있고 마가진(구멍가게)에서도 인스탄트빵이나 과자같은 걸 살 수 있다. 잠깐 정차하는 역이 아니라 1시간 정차하는 역에서라면 차장에게 눈도장을 콱 찍고 (나 없이 출발하면 안되니까 ㅠ) 잠깐 역 밖에 나가서 음식을 사올 수도 있다.

 

 

그리고 이도저도 안된다면 각 객차마다 차창이 파는 음식이 있으니 사 먹을수 있다. 그래봐야 도시락라면, 감자수프 같은 것이다. 가격도 마가진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

 

각 개차마다 이렇게 뜨거운 물이 나오는 물통이 있으니 컵라면 등 각종 인스턴트 식품을 다 섭렵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어진 셈이다. 물이 굉장히 뜨거우니 조심해야된다. 뜨거운 물에 데였던 결은 살갗이 빨개졌었다. 아무튼 굉장히 뜨거우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티.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열차에서는 자주 물을 마셔줘야만 할 것 같다. 뜨거운 물이 있으니 텀블러를 준비해서 계속 차를 마셔주면 좋다. 열차에 타기 전에 티백을 구입해서 오는 것이 좋다. 안그러면 차도 돈을 내야된다. 컵과 티백 하나에 40루블. 컵은 돌려줘야된다. 러시아 사람들은 차를 너무나 좋아해서 하나 슬쩍 얻어도 될 듯하다. 아무튼 계속 수분섭취를 해주는게 좋다.

기차에서 보는 풍경은 너무 아름답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또 인사가 돌아온다. 잘생긴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윙크까지 날려주니 그럴 때마다 하늘로 붕 뜨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늘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온갖 먼지가 부유해다니기 때문에 건강에 소홀해지면 아프기 딱 좋다. 그러니 잘 먹는 것은 참 중요하다.

주머니가 무거우면 무거운대로, 가벼우면 가벼운대로.

일단 잘 먹고, 잘 먹고, 또 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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