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여행 : 대만의 현대사를 볼 수 있는 백색테러 징메이 기념단지 _ 징메인 국가인권박물관
대만에는 국립인권박물관이 두군데 있다. 그 중 하나는 뤼다오에 있고 다른 하나는 타이베이시에 있다. 가기에 어렵지 않고, 여기에서는 특히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한다. 대박. 한국어로 된 브로셔도 있다. 특히 이 브로셔가 대만 역사에 대한 간략한 연표를 담고 있는데 대만의 현대사를 이해하기에 좋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간단한 신분증을 맡기면 무료로 대여가능하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중화민국 정부는 대만으로 건너와 대만을 접수했다. 국민당 정부에 의해 1947년 2.28사건이 발생했고 같은해, 국공내전의 패배로 중앙정부가 대만으로 철수했다. 정부는 반공과 안정을 기치로 강압통치를 실시하는데 계엄령 선포 등 다양한 법령을 동원해 시민을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을 저질렀다. 1992년까지 지속된 이 시기를 '백색테러시기'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민주화시기라고 하면 될까?
뤼다오와 징메이 모두 당시에 형무소로 쓰였던 곳으로 정치범을 수감하고 고문했던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나라의 남영동대공분실+서대문형무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될 듯. 지금은 국가인권박물관으로 탈바꿈해 당시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타이베이 시내에 있지만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중심가와는 좀 떨어져있다. 혼자이고 택시비가 부담되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지하철로 갔다가 버스로 갈아탔다. 구글맵이 친절하니 가는 길은 하단 구글맵참조.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면 약간은 삭막한 느낌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방문자센터가 있고 그곳에서 브로셔를 챙기고 오디오가이드를 빌리고 징메인 기념단지 투어에 나섰다. 처음엔 조용해서 좋았는데 나중에는 진짜진짜진짜 무서워서 오디오 내용에 집중이 안됨.ㅠ
징메이형무소는 원래 군법학교의 학사부지였던 곳이었고 이후에는 군사구치소와 군사법정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백색테러 시기에는 정치범을 잡아들이고 심판하고 교도소 업무까지 대신 수행했던 곳이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곳이다. 현재는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원래는 군사구치소였는데 백색테러 시기에는 직원들을 위한 숙소나 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내부에는 이렇게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는데 온통 중국어라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ㅠ 무튼 인권과 관련된 전시나 백색테러시기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강당으로 사용되던 곳. 지금은 들어가 볼 수 없다.
형무소로 들어가는 입구. 백색테러시기 실제 형무소를 보존했다.
입구에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해태상이 있는데 이 조각도 징메이 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을까.
사진에는 없지만 형무소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으로 가면 2019년 오픈예정인 인권학습센터가 있는데 이쪽이 당시 이곳에 수감된 수형자를 면회하러 온 가족들이 들어오던 입구라고 한다. 일주일에 단 한번만 면회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먼 곳에 사는 가족들은 면회전날 밤기차를 타고 올라와 대기했고 그마저도 여러가지 이유로 가족을 만나지 못해 돌아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형무소 내의 시설과 밥이 열악했기 때문에 음식을 전해주기 위해 밤을 꼬박새서 달려왔는데 채 얼굴도 못보고 돌아가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
모형으로 보는 형무소.
여성수감자들을 위한 감옥은 2층에 위치해있다. 옥사는 좁은데 수감자들은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면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 한 팀이 자는 동안 앉아있는 사람들이 부채질을 해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남성옥사의 모형. 역시 매우 붐비고 좁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에서도, 심지어 대만에서도 지금은 박물관이 된 형무소를 갔다왔는데 공통점 중 하나가 좁다는 것.
이 곳은 형무소에 처음 들어온 수감자들이 와서 조사받는 곳이다. 좁은 책상에 분리되지 않은 공간. 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짐작할만하다. 정보공안기관은 불순 분자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제대로 된 조사와 재판없이 많은 사람들을 수감하고 고문하고 처형했다.
의료를 담당했던 곳. 역시 열악하다. 의사출신인 수감자가 이곳에서 노역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의료기구나 약이 없어 수감자들을 치료하기 어려웠고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하는 것도 잘 허가되자 않았다. 의사 수감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외부의 지인들을 통해 약을 구해와 환자들을 치료해야만 했다.
면회실, 의무실 등등의 사무실이 있는 곳.
여기는 면회실과 매점이 함께 있는 곳. 정면에 보이는 왼쪽 하얀 의자가 면회자가 대기하는 곳이었고 수감자가 오면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면회할 수 있다. 역시 개별적인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매점. 왼쪽에 과일이 보이고 정면에는 치약, 비누 등 다양한 생필품을 파는 곳이다. 형무소에서 제공되는 음식의 질이 매우 떨어졌고 생필품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사비로 이곳을 이용했다.
매점의 모습.
면회실의 옆에는 이런 비밀스런 공간이 있다. 면회자와 수감자가 하는 어떤 대화를 하는 감청하고 녹음하는 곳이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형무소 내부. 진짜진짜 무서웠다. 날씨도 약간 추웠는데 으슬으슬 떨면서 습한 형무소를 견학하는 것이 나에겐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도 무서웠다. 이곳이 사람들에게 공포의 공간이라는 걸, 다시한번 상기했다.
이렇게 한 공간에서 밥도 먹고 똥도 싼다. 밥을 먹는 공간은 나중에 생기기도 하는데 초반에는 공간이 분리가 되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수감되었으며 화장실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이곳은 독방.
수감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벽에 머리나 몸을 부딪히며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렇게 벽면을 말랑말랑한 스펀지로 대어놓았다고 한다. 흰 벽이 보이는데 양 쪽으로 주황색이 스펀지이다.
형무소 앞 작은 정원. 수감자들에게는 운동도 제약되어 있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햇빛을 받고 운동하기 위해 이 공간을 이용했다고 한다. 타이베이 시내에 오래된 공장을 이용한 도시재생공간을 다녀왔는데 여기가 그곳과 약간 오버랩되기도 했다. 나무들이 너무 아름답고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형무소라는 이유만으로 무서워져버렸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곳은 도서관과 식당등이 있는 건물이다.
식당의 모습. 밥도 먹고 공연등도 했던 공간.
초반의 모습은 이러했다. 원래는 옥사 안에서 나눠주는 밥을 사람들이 함께 먹었다.
그리고 차츰차츰 발전해 식당까지 생기게 되었다. 식단도 초반에는 매우 부실했지만 역시 차츰 개선되었다고 한다.
식당 뒷편에는 이렇게 신문이 있어서 외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형무소에서 검열을 했기 때문에 군데군데 잘려진 부분이 있다.
이곳은 도서관
많은 수감자들이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책의 종류도 다양하지 못해 수감자들의 지적욕구를 채워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노역은 수감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일 중 하나였다.
징메이 형무소는 빨래노역이 주였다. 형무소의 수감자들은 주로 교복이나 관복, 침대시트등이 일거리로 주어졌다. 수감자마다 각각 다른 역할을 맡았는데 빨래 수거, 배달, 세탁, 다리기 등의 일을 했다. 이 일들의 정해진 양은 없고 날마다 달랐기 때문에 일의 양에 따라 노동시간도 달라졌다. 꼬박 밤을 새서 일을 해야하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면으로 된 옷을 다리는 일은 수감자들이 선호하는 일이였지만 타기 쉬운 옷감을 다리는 일은 피하고 싶은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빨래공간. 여름, 겨울 상관없이 두번씩 빨래를 해야했는데 이 역할을 담당한 수감자들은 피부질환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오른쪽 세탁기에서 빨고나서도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은 왼쪽에서 손으로 빨았다.
여긴 2층. 여성옥사가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양한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내가 갔을 때도 뭔가 전시하고 있었는데 온통 중국어라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인권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재판정. 4개의 재판정을 볼 수 있다.
외부에는 백색테러기간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세워져있다. 음,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연도별로 수감된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진 명패가 있고 명패에는 그가 살았던 연도가 표시되어 있다. 감옥에서 사망한 사람과 감옥에서는 아니지만 현재 사망한 사람 등 블록의 높낮이와 빨간 글씨로 표시되어 있는데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ㅠ 아, 어디에 쓰지 않으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수치에 놀랐던 기억만..ㅜ
음, 이 곳은 특별사동이다. 류이량 암살사건의 범인인 왕시링 (당시 국방부 산하 정보국 국장) 과 그 일당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류이량은 대만정부와 장제스, 그리고 장제스가 사망 후 집권한 그의 아들 장징궈를 비판하던 기자였다. 안전의 문제로 미국으로 도피해 살고 있었고 어느 날 차고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대만정부가 배후임을 알게 되었고 미 의회는 대만정부에 진상규명을 요청하며 압박했다. 결국 장징궈는 왕시링과 그의 부하들이 독단적으로 행한 일이라고 밝혔고 (꼬리자르기) 그들은 징메이 형무소에 수감했다.
그런데 그 일당이 수감된 옥사는 단독주택에 침대와 부엌, 응접실, 욕조가 있는 화장실이 갖춰진 (심지어 화장실 두개) 곳. 범죄자를 수감하는 곳이 아니라 편의를 제공해주는 곳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 사건은 대만 언론자유화에 불을 지핀 계기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후 지속적인 대만시민들의 민주화요구로 백색테러는 정식 종결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2.28사건과 백색테러기간 수많은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과제로 남아있다. 또한 장제스와 국민당정부에 대한 향수도 남아있고.
징메이인권박물관이 꽤 오랜시간에 걸쳐 준비된 곳이라고 했는데 현대사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들여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이 왔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오디어가이드와 브로셔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긴 했지만 꼭 이곳이 대만의 민주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곳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