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바이칼 호수를 지나다. _ 셋째날
러시아에서는 바이칼 호수를 절대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비록 나는 이번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수를 그냥 지나가기만 하지만 사실은 많은 한국인들이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와서 3일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역에 내려 바이칼 호수를 보러 온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야 이르쿠츠크 역에서 내려 바이칼로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어떤 사람은 이르쿠츠크역에서는 1시간 정도 정차하니 눈썹이 휘날리게 뛰억서 바이칼 호수를 잠깐 보고 다시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오면 기차를 탈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말도 안통하는 시베리아에서 미아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시베리아횡단열차가 지나가는 지도를 보니 바이칼 호수를 끼는 구간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이르쿠츠크역이 다가올 즈음 조그만 웅덩이에 물만 보여도 '헉, 바이칼'하면서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고 가장 큰 호수라고하는데 전혀 그 규모가 짐작이 되지 않으니 웅덩이만 봐도 가슴이 철렁할 수 밖에.
기다림에 지칠 즈음 어김없이 울린 배꼽시계 덕분에 레스토랑 칸으로 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장난치면서 놀고 있었다. 해도 어느덧 뉘엿뉘엿. 이렇게 해가 져버려서 어둠이 찾아오면 바이칼을 지나면서도 바이칼인줄도 모를텐데. 지평선밑으로 떨어지는 해를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이칼호수를 지나갈 때 까지만 기다려달라고!
어쨌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창 밖을 바라보다가 호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헉. 호수다! 그런데 이 호수가 바이칼호수인지 아닌지는 우리로서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괜히 우리끼리 설레발을 치면서 난리를 치다가 다른 테이블에 앉은 러시아인에서 "바이칼?" 물어보니 "바이칼"이라고 대답한다. 오 드디어 바이칼을 지나고 있다. 해는 벌써 자취를 감추고 어스름한 빛만 남겨놓았다.
수평선이 보인다. 헉. 이게 호수란 말이지? 바다인지 호수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는 내내 '바다야'를 몇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기차가 수십분동안 달릴동안에도 호수는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리고 바이칼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바이칼호수의 나이는 3,000만살이다. 그 세월을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고 세계에서는 7번째로 큰 호수이다. 호수라 쓰고 바다라고 읽어야 될 정도로 크다. 300여개가 넘는 강으로부터 물이 흘러들어와 호수를 만들고 단 1개의 강, 앙가라강으로부터 물이 빠져나간다고 말하면 그 규모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까? 바이칼호수의 담수는 러시아전체 담수의 90%를 차지하고 세계의 담수 1/5를 차지한다고 하니 과연 세계의 민물창고이다. 그렇기때문에 많은 지질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의 연구지이기도 한 곳이다.
시베리아의 호수답게 겨울이 되면 이 호수 전체가 꽁꽁 얼어붙는다. 겨울철에 바이칼호수에 갔다왔던 동생이 지프차를 타고 호수 위를 종횡무진했다고 하는데 간이 철렁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깊은 호수인데 이렇게 달리다가 얼음이 깨져서 빠져버리면...ㅠㅠ
이 호수에 사는 생물종도 너무 다양하다. 철갑상어나 바다표범이 살기도 하는데 가끔 다큐멘터리에서 시베리아 소수민족이 이 호수에서 커다란 상어나 표범을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은 경이롭다. 상어가 살고 바다표범도 살고, 그리고 인간도 살아간다.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서 많은 독일인들이 모스크바로 온 후 다시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섬에서 휴양을 하고 간다고 한다. 물론 거리상 가까운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기차로 수십분을 달려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호수.
다음 번에 기차를 탈 때는 꼭 이르쿠츠크역에서 내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