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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러시아

시베리아횡단열차 프롤로그

 

 

낭만이 있었다.

어릴 적에는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타서 모스크바까지 간 후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가는 것이 꿈이었다. 어릴 적, 아빠는 내가 크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아직은 내가 덜 컸는지 그런 꿈이 쉬이 잡혀질 것 같지가 않다.


어쨌든 살아서 한번은 꼭 해보고 싶던 '시베리아횡단열차탑승'을 했다. 9,280km.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톡과 수도인 모스크바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긴 노선. 그 열차의 길이도 너무 길어서 세계에서 가장 긴 기차라고도 한다.

 

내가 탑승한 구간은 블라디보스톡 - 노보시비리스크 - 카자흐스탄 알마티 구간으로 1860년대 부터 1937년까지 극동지방(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했던 루트를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모스크바에서 파리로 여행하는 것은 다음 꿈으로 남겨두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삶의 터전을 등져야했던 고려인들에 대한 생각과 열차로 넘는 국경에 대한 환상을 안은 채 시작했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기.

 

7일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보낸 날들을 단 한편의 글로는 정리할 수 없겠지만 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만큼은 이야기하고 싶다. 독일에서 왔다던 두 명의 여대생. 러시아와 몽골을 수개월간 여행을 했다며 낡은 기타를 수줍게 꺼내들어 독일어로 된 노래를 아주 당차게 불러주었었지. 곁에 앉은 러시아 아줌마와 아저씨는 나를 위해 선뜻 자리를 내어주며 나의 짧은 러시아어 인사에 참 기뻐했다.

 

우리 객실을 몇일간 함께 썼던 러시아인 아저씨는 나의 러시아어 발음 교정에 정말 힘써주었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똑같은 말을 열댓번은 따라하게 하며 잘 하지도 못하는 러시아어로 인한 좌절감을 맛보았다.

 

우리 객차의 차장은 나보다도 훨씬 어린 젊은 아가씨였는데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표정으로 러시아어못하는 한국인여행자들을 걱정을 해주는데 이렇게 쓰면서도 이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도통 걱정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뭐 하나 잘못하기라도 하면 열차 밖 시베리아벌판으로 던져버릴 듯한 표정을 하고 그런 따뜻한 말들을 한다는게. 음..그래도 마지막에 수면안대를 사겠다고 말하는 내 서툰 러시아어 덕분에 그 여자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 예뻤는데.

(개인적으로 러시아 사람들은 참 웃는 방법을 모르는 듯 하다..)

 

참 친절했던 사람들.

 

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긴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아주 긴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들.

 

함께 여행을 하는 떠별들 중 한 명이 긴 시간, 인터넷도 되지 않고 여가거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계획표를 짜오라고 하자 아주 당당하게 하루에 2시간이나 '열차탐방'이라고 넣어놓고는 내내 좁은 객실에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열차탐방이란 뭔지 보여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한 후 우리 객실에서 다른 객실까지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사실 열차와 열차가 연결된 부위를 지나가는 것은 힘들다. 덜컹거림이 심하기도 하고 여러번 문을 열고 닫았다 반복해야되는 귀찮음도 있고. 소련시대의 낡은 기차를 그대로 쓰는 까닭에 열차탑승에 대한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문을 제대로 닫지 않으면 각 객차의 차장이 얼마나 잔소리를 해대는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러시아어로, 그 차가운 표정을 하고 따발총을 쏘아대면 심장이 쫄깃해지다가도 '에잇, 더러워서 내가 안 움직인다.' 이런 마음을 갖게된다. 그래도 가보았다. 특히나 4인실을 쓰는 우리에게 6인실이 주는 호기심 같은 것도 있었고. 언제가는 6인실을 타고 모스크바까지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방마다 문이 없어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6인실에서 아저씨들은 밤마다 보드카를 마시고 조금만 친해져도 그렇게 보드카를 권한다던데. 드르렁 콧소리에 잠을 못자기는 일쑤이고 우는 아기, 화장실 들락날락 거리는 소리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 주는 매력이라는게 있으니까 언젠가는 꼭 한번 6인실을 이용해 기차여행을 하고싶다.

 

6인실은 객차의 문부터 달랐다. 덜 고급지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6인실을 거쳐거쳐 끝까지 가볼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동양인 아저씨들이 카드놀이를 하면서 길을 막고 있었다. 막으려고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카드놀이에 심취한 탓인지 우리에게 길을 내어줄 생각을 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길을 내어달란 말은 않고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카드놀이를 하는 아저씨들에게 길을 비켜주라고 한국어로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행색이 우리나라 사람같지는 않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시기에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어보자 나에게 '아랫동네에서 왔어요?'라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알아듣지 못하고 '고려인이세요?' 되물었다. 대화를 나눌 요량으로 모르는 사람의 침대에 앉았다. 사실 처음에는 그 분들이 고려인인줄 알았다. 우리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고 또 반갑기도 하여 인사나 제대로 하고 싶었다.

 

어디에서 오셨냐고 물으니 평양에서 오셨다고 한다. 나는 제주도 사람이라고 하니, 감탄을 하며 제주도는 사진으로만 보았다고. 나도 평양은 사진으로만 보았다고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니 아저씨가 통일이되면 오라고 하신다. 자기도 제주도는 꼭 한번 가보고 싶으시다고. 내 꿈이 서울역에서 기차타고 평양 여행하고 모스크바가고 파리 가는것이라고 하자 허허 웃으신다. 서울은 살기 좋으냐고 물어보시길래 어떤 대답을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한 대답은 '비싸요'였다.(정말 서울은 비싸다.) 하지만 제주도는 참 살기 좋으니 꼭 놀러오라고 거듭 말씀드렸다. 함께 있던 학생을 보면서 학생이냐고, 남쪽은 인민학교가 없느냐, 몇년을 공부하느냐 이런 질문도 하셨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반도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하면서 이렇게 남의 땅에서는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인데. 작은 나라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작 텔레비젼에서 말하는 몇가지 정보들로만 서로에 대해 얼마나 떠들어댔던가. 초등학교 때 교실 뒤 작은 도서관에서 보았던 안보관련 책에서처럼 이 아저씨들의 얼굴이 빨갛고 뿔이 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그런 것 외에 많은 것을 아는 것도 아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아저씨들 중 빨간티를 입은 건장한 아저씨를 보고 흠칫 놀랐다. 북한 사람이 저렇게 뚱뚱해도 되나? 반짝반짝 빛나는 저 것이 금목걸이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저런 패션도 가능하단 말이야? 북한사람들이 카드놀이도 한단 말이야? 이렇게 많은 북한사람들이 열차로 이동하는데 감시하는 사람 한명 없을까? 평소에 아니라고 말해왔지만 나 역시도 언론에서 말하는 것에 의해 얼마나 많은 편견에 사로잡혔던 사람이었는지.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지만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만난 평양의 아저씨들이 여간 반가운게 아니었다. 남의 땅에서 이렇게 만나고 대화도 할 수 있는데 우리 땅에서는 만날 수 없고.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지. 열차에서 만나 짧은 대화를 했던 사람들에게 내 명함을 주며 한국에 대해 궁금하면 물어봐도 된다고 이야기 했지만 내 명함을 건네기조차 고민이 되고 서울이 살기 좋으냐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하는 사람들. 소련 시절에는 소련으로 유학을 가거나 노동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책에서는 많이 읽어보았지만 2014년 지금도 북쪽의 사람들이 러시아땅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어쩌면 북쪽의 사람들이 갈 수 없는 땅은 오로지 남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사실 통일은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평양에서 온 아저씨들을 만나고 난 후, 사실 조금은 감격스러웠다. 반드시 북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고려인 이주사 공부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고려인들은 한결같이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두마디씩 하곤 한다. 우리에게는 남도 북도 다 같다는 고려인들.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져있는데 어떻게 한 편만 들 수 있겠느냐며 빨리 통일되었으면 좋겠다는 고려인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건 어떤 경제적 혹은 정치적 문제와 결부시키고 싶지 않다. 이산가족들의 슬픔, 사람과 사람의 만남. 왜 인간적인 문제에 돈과 이념을 대며 재고 잘라야만 하는지.​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중간에 정차한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짧게 산책하는데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러 나와계시길래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받아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환승해야 하는 노보시비리스크에서 하차 한 후 역을 향해 가는데 또 아저씨들이 나와계시길래 인사를 하니 잘가라면서 손을 흔들어주셨다. 그 짧은 인사에도 따뜻함이 느껴져서일까. 조금은 울컥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 명함조차 줄 수 없고 서울이 어떤지 자세히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차가운 러시아땅에서 우리 말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

아마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연락처를 주고받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헤어질 때도 ​다시보자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어떤 인연의 끈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나는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조금은 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이다.

만남이 ​쉬워졌으면 좋겠다. 아무 이야기나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어떤 땅에서든 만날 수 없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평양과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로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