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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다. _ 첫째날

드디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다. 일교차가 컸던 블라디보스톡. 하루에도 더웠다 추웠다를 몇번이나 반복했던 것 같다. 어릴 적 부터 너무나도 해보고 싶었던 여행 중 하나인 시베리아횡단열차. 드디어 블라디복스톡의 변덕맞은 날씨를 뒤로하고 그 날이 온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것이 내심 기대되었던 또 다른 이유는 드디어 블라디보스톡을 떠난다는 것. 냉랭한 표정과 말투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을 쏟아대는 러시아 사람들이 조금은 불편했다. 솔직히 좀 기분이 나쁜 적도 있었고. 아니, 러시아어 좀 못 알아들을 수 있지. 그렇게 한숨까지 쉬어가면서 냉대할건 뭐람. 한국말과 영어를 할 줄 알았던 러시아의 대학생들은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고 블라디보스톡의 면면을 안내해준 그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대체적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너무나도 쌀쌀맞은 러시아사람들 덕분에 그냥 떠나는 것이 좋았다. 나중에야 알았지. 러시아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는 그들의 마음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 교통체증도 한 몫했다. 블라디보스톡에는 차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일방통행으로 도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차가 무지 막힌다. 정말 머리가 빙빙돌았었지. 어쨌든 시베리아횡단열차 타는 것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 밤이 왔다!

열차시간이 다가오니 서둘러 짐을 챙기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십분 정도. 내가 머물던 숙소는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라고 하는데 단지 반지하를 호스텔로 개조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싼아파트가 가져야할 아름다운 뷰라든가, 따뜻한 햇살이라든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숙소를 나오고 뒤돌아보니 웬지 숙소가 아름답게 보인다. 블라디보스톡의 텅텅 빈 거리도 너무 예뻐보였다. 갑자기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 다음에 온다면 제대로 된 블라디보스톡을 보겠어. 물론 러시아어를 좀 배우고 와서!


블라디보스톡 역을 감싼 밤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러시아의 밤하늘. 분명히 서울의 그 것과, 제주도의 그 것과는 달랐다. 서울의 밤하늘이야 밤하늘의 색이 무슨 색인지도 모르게 온통 건물에서 나오는 빛들로 뒤덮여져 있지만 제주도의 밤하늘은 확실히 밤을 아는 하늘이다. 잔잔한 어두움이 밤을 불러오면 별이 빛난다. 가만히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다보면 하늘이 서서히 빛을 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빛이 빛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밤하늘이 밝아져 떠다니는 구름이 희미하게 보이면 별은 더 빛을 낸다. 아마 구름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양보하고 싶지 않을 까닭일지도. 러시아의 밤하늘은 그냥 블라디보스톡같다. 도통 알 수가 없다.

​블라디보스톡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검색을 받아야한다. 한번 들어가면 왔다갔다하는게 복잡해질까봐 아예 안녕하는 마음으로 뒤돌아서 블라디보스톡의 시내를 훑는다. 레닌이 나에게 안녕하고 인사한다. 레닌. 러시아의 곳곳에 세워진 레닌의 동상만 모아도 엄청날 것이다. 확실히 러시아내전의 승리와 세계대전의 승리의 의미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조금 남다른 듯 하다. 나에게 손을 흔드는 레닌에게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역으로 들어왔다.

옛 소련지역의 역들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던데 블라디보스톡 역시 역 안이 그림과 샹들리에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정교회의 나라답게 역 안으로 들어왔을 때 보이는 정면에는 정교회 성인의 성화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스크바행 기차를 타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6인실칸 (3등석)을 탔을 때 블라디-모스크바 구간은 10만원대로 저렴하다. 그래서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시베리아로 향하는 노동자들도 많이 탄다. 이르쿠츠크로 가는 중국인이나 한국인관광객도 시베리아횡단열차의 묘미를 느끼기 위해서 타기도 한다. 4명씩 쓰는 쿠페 (2등석)은 요금이 2배이상 한다. 그래서 여행사를 껴서 블라디-모스크바행티켓을 구매하게되면 비행기를 타는게 훨씬 더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이익이다. 7일이나 걸리는 장거리 열차여행을 견디기에는 확실히 체력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감수할만한 큰 매력이다. 하얗게 튼 자작나무들이 빽빽히 키자랑을 하는 숲을 지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너무 평안해진다. 그리고 그 하얀빛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시림때문에 러시아소설에서 나타나는 러시아인만의 고독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쨋든 7일간의 고단한 여행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인생에서 한번쯤을 탈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이되자 서둘러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객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다. 창문을 통해 얼핏보니 이런 모습이 보인다. 2층 침대 위에 이불과 창문 밑 테이블. 저 테이블은 4명이서 쓰는데 사실 4명이서 쓰기에는 너무 좁다. 사진에서는 등받이만 보이는 것은 1층이다. 의자가 곧 침대인 셈이다. 2층을 사용하는 사람도 1층의 좌석과 테이블을 공유해야 되기 때문에 1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공간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4인실 쿠페객차는 4명이 한 방을 이용할 수 있게 공간 분리가 되어있고 6인실은 공간분리가 되어있지 않다.

 

타기 전에 차장에게 티켓을 보여주고 확인을 받은 뒤 탄다. 열차가 출발하면 차장이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이걸 준다. 여기에는 이불보와 이불 커버, 베게커버, 수건 1장이 들어있다. 두꺼운 요를 덮을 수 있는 큰 천으로 요를 감싼다. 이불커버는 입구를 잘 찾아 끼우면 되고 베개커버도 마찬가지이다. 좁은 객실안에서 이불커버를 씌우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늦은시각 열​차에 탑승하고 부랴부랴 잘 준비를 하고 바로 잠에 들었다. 덜컹거림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설레임과 기쁨으로 그런 불편함은 일도 아니다. 자,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첫 밤이다. 이 열차의 종착역이자 시발역인 블라디보스톡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