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에서 중정기념당만큼 애매한 곳이 또 있을까?
장개석의 본명을 딴 이곳의 이름만 두고본다면 이곳은 장개석을 기념하는 곳이다.
중국 공산당에 밀려 타이완에 온 그는 중화민국의 수도를 난징에서 이곳 타이베이로 옮겨왔다. 몇차례 중국 본토를 노리지만 실패했다. 우리가 대만(타이베이)라고 부르는 곳은 이 섬의 이름이고, 대만의 정식명칭은 중화민국이다. 대만으로온 장개석은 1975년, 89세의 나이로 죽을때까지 총통에 취임해 권력을 잡았다. 일평생에 걸쳐 공산주의와 싸웠다던 그를 위한 이 기념관은 그가 사망한 뒤 그를 기리기 위해 국가적으로 지어졌다. 타이베이 시내의 필수 관광지이자 가장 웅장한 이 건축물을 마주하니 그가 누렸던 권력이 새삼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대한 기념관. 보이는 계단은 모두 89개이다. 장개석의 나이대로 계단을 만들었다. 계단 밑에는 1층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1층에 장개석에 관한 전시가 있으니 1층부터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가면 유명한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다.
내가 들어왔던 문. 정문은 더 웅장하지만 부지가 넓어 먼 정문까지, 비 오는 날, 굳이 가고싶지 않아 패스했다. 대효문만으로도 충분히 이곳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중정기념당은 꽤 넓어서 여러곳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내가 갔을 때에도 지브리 전시와 앤디워홀 전시를 유료로 하고 있었고 그 밖에 상설전시와 민주주의와 관련된 특별전시도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전시실은 장개석의 업적을 기리는 전시실로 1층 가운데에 위치해있다. 장개석이 탔던 차, 사용했던 사무실, 의자, 펜 등등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장개석의 집무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장개석의 뒤로 대만을 포함한 중국의 지도가 있다. 최근 대만 내에서 대만 독립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 그와 별개로 중국대륙을 포함한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장개석과 국민당의 포부가 보인다.
많은 사진 자료와 유물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중국어로 되어있고, 큼직한 전시만 영어 설명과 함께 되어있어서 충분히 보기엔 아쉬웠지만 어쨌든 이 전시실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분명했다. 일생에 걸쳐 공산주의와 싸운 중화민국의 영웅, 장개석.
그런데 2007년, 중정기념당의 이름이 바뀐다. 대만민주기념관으로.
국민당이 대만으로 들어오고 난 후에 발생한 2.28사건을 비롯해 장개석이 집권해 계엄령을 선포한 백색공포시기에 대한 진상규명과 민주화에 대한 요구로 민진당이 정권을 잡자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 2.28과 백색테러로 인한 징메이 형무소에 대한 포스팅은 추후에. )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중정기념당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는데,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곳에서는 대만 민주주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작은 전시실도 생겨나게 된다. 3층에 있는 이 전시실이 그렇다. 장개석의 전시실과 비교해서 규모는 터무니없이 작지만 나에게는 이곳이 더 흥미로운 곳이었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대만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이슈를 중심으로 짧은 연표가 있다.
그중 반핵집회. 아시아지역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탈핵을 선언한 대만의 힘을 보며 부러웠는데 여기에서 이런 사진을 보게 되니 반가웠다. 이 전시실에는 탈핵요구를 위한 활동 뿐 아니라 동성결혼을 합법화로 이끌었던 활동, 2.28진상규명을 비롯한 민주화에 대한 다양한 요구들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반가웠다.
그리고 특별전. '현대인권영상전'이라는 이름의 전시였는데 <쇼아>를 비롯해 다양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흥미롭게 본 영상은 <공위시대>. 독재자가 죽은 후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독재자가 사망한 후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감독은 국가공식기록이나 국영방송의 필름을 잘라 편집했다. 사회주의국가의 지도자가 죽은 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수만의 사람들, 광장에 암울하게 모여있는 수천의 사람들, 땅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들, 하나같이 모두 슬픈 얼굴이었던 사람들을 보여준다. 평양시민들의 모습도 있다. 독재자의 모습은 없고 오로지 시민들의 모습만 보여주면서 개인은 없고 전체주의만 남아있는 사회를 굉장히 우울하게 담아냈다. 영상을 보고나니 우울해졌고 머리가 아파왔다.
하노이의 호치민박물관에서도 비슷한 영상을 봤다. 호치민이 죽고 애도하는 하노이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나도 울컥했고 조금 감동했다. 이 영상의 시각은 조금 달랐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봤던 호치민 영상을 사회주의 국가의 프로파간다라고 말하겠지만 <공위시대>역시 하나의 프로파간다처럼 보여졌다.
이건 미국의 필름. 미국에서도 나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각인시켜준다. 이 필름은 미국에서 열렸던 나치집회와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뭐랄까. 현대인권이라고 하기에는 다룬 주제들이 너무 지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상을 보고 현대인권과 연관지어 생각해야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반민주적인 이야기들이 장개석 동상 밑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짜릿했다. 4층에는 장개석의 동상의 있는데 우리는 바로 그 밑에서 대만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고 전체주의에 대해 꼬집고있다니. 중정기념당은 정말 애매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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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개석 동상. 엄청 크고 웅장하다. 장개석 표정도 엄근진. 한시간마다 열리는 근위병교대식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밑 3층에서는 장개석을 은근하게 까는데 4층에서는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니. 정말 애매한 곳이다.
사실 근위병 교대식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보고나서 너무 흥미가 생겨버렸다. 누군가를 호위한다는 느낌보다는 박자를 만들어내면서 춤을 추는 것 같아서 또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춤 같았다. 총과 칼을 들고 박자를 만들며 추는 춤이라니. 또 애매하네-_-;
이 근위병들 거의 한시간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이렇게 서있는다. 이렇게 서있으면 경비원이 와서 바지 각도 잡아준다.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을 이끌던 가이드는 얼굴만 봐도 원주민인지 중국화교인지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 서있는 사람은 원주민이라고 했다. 난 잘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장개석과 국민당에 의해 차별당하고 배제당했던 원주민이 장개석을 호위하는거라면, 이것 또 진짜 애매하다.
1층에서부터 이렇게 각 맞춰 걸어오고 이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간다.
어떤 기사를 보니, 민진당이 집권하면서 다시 중정기념당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2월 28일에는 2.28사건을 기리기 위해 중정기념당이 하루 문을 닫았다고도 한다. 아직 장개석의 집권시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다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곳이 타이베이와 대만의 상징이 되어가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했다.
다시 또 온다면, 그 때에는 대만의 민주주의에 대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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