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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일본

교토여행 : 윤동주시비와 정지용시비가 있는 도시샤대학 찾아가기


윤동주시비와 정지용시비를 보기 위해서 도시샤대학 (동지사대학)으로 갔다.

교토에서는 버스카드만 있으면 하루종일 버스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 그래서 길을 헤매거나 잃어버려도 큰 걱정이 없다. 버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버스정보센터에서 주는 버스지도만 있으면 일본어를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어려울 것이 없다.

윤동주시비와 정지용 시비를 보기 위해서는 도시샤대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야하는데 나는 어리버리하게 도시샤여자대학 앞에서 내렸다.

도시샤여자대학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건너편에 정문이 보인다.



윤동주 시비와 정지용 시비를 찾기 위해 작은 도시샤 여자대학 이 곳 저곳을 헤매다가 건물 속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오래된 옛 건물들이 잘 관리되어 고풍스럽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시비가 보이지 않자, 정문 옆 경비실로 가서 영어로 물어봤다. 내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시고 단지 '윤동주'만을 알아들으시고는 "! 윤동주!" 하시면 저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신다. 아마 나같은 사람이 많은가보다 ^^; 

어쨌든 도시샤여자대학 바로 옆, 길 건너편에 있는 진짜 도시샤대학으로 갔다.

도시샤 대학 앞에서 또 헤맬까봐 경비실에 물어보니 또 '정지용''윤동주' 이름만 들으시고는 지도를 꺼내 길을 알려주신다. 일본 사람들 참 친절하다. :)



이 건물을 지나 바로 옆 코너로 꺽으면 윤동주 시비와 정지용 시비가 있다. 



윤동주 시비이다. 윤동주시인의 대표시인 서시가 새겨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정지용 시비이다.

 

 

鴨川 (압천)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출 욱어진 고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시의 제목인 압천은 교토의 가모가와 강의 한자표기이다동지사대학에서, 그것도 일제강점기에 피지배인으로 유학생활을 하던 정지용시인이 고국을 얼마나 그리워했음을 짐작할 만하다일본땅에서 조선인으로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왼쪽에는 윤동주 시비가, 오른쪽에는 정지용 시비가 나란히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조선인의 숫자가 5000명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 이 곳 도시샤 대학교에는 조선의 문인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윤동주시인과 정지용시인이다. 윤동주 시인은 이 곳에서 6개월을정지용 시인은 이 곳에서 6년을 수학했다고 한다.

 

 정지용 시인은 이곳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1924년 입학해 1929년 졸업했다. 정지용 시인은 위의 시에서처럼 외롭게 공부를 했다일본 유명한 시인의 시를 배껴쓰면서 시 창작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고 마침내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감성을 잘 표현한 대표 서정시인이 되었다. 이후에 월북했다. 

정지용 시인을 흠모하던 윤동주시인은 1942년 이곳으로 유학오고 1945년 독립운동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로 끌려간 뒤 그곳에서 생체실험을 당해 옥사한다.


1995년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먼저 세워지고, 10년 후에 정지용시인의 시비가 세워졌다. 

 

 


넓은 공간도 아니었고 화려한 공간도 아니었다. 잘 찾아야 겨우 시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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