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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경주여행 : 교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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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는 국학, 조선시대에는 향교. 시대를 이어 교육기관이 자리한 덕분에 마을 이름도 교촌마을이다. 교동, 교촌, 교리 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이 으레 그렇듯이 향교가 있는 마을로 이해하면된다. 경주 교촌마을의 입구에도, 향교가,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어서일까? 향교의 중요한 부분은 닫혀있고 다른 향교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없다. ㅠ 


한옥이 즐비한 마을 곳곳이 사진찍기에 명당이지만, 내가 뽑은 명당은 최부자댁 뒷마당이다. 



뒷마당 툇마루에 앉아서 보이는 풍경이다. 작지만 오래된 나무와 오래된 기와들이 제법 잘어울린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바람도 솔솔분다. 400년간 만석의 재산을 지켰다는 최부자댁. 난리통에도 이 집이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최부자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나 뭐라나.


한해 삼천석의 수확량 중 천석은 자신이 갖고, 천석은 손님들에게, 천석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조선의 부자. 사방 백리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해야한다는 것이 이 집안의 전통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광복 이후에는 대학설립을 위해 재산을 썼다고 한다.




한옥의 풍경이 아름답다. 자꾸 담 너머가 궁금해져서 이집 저집 담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곳에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마지막은 그 유명한 교리김밥으로 마무리. 그냥 계란이 많이 들어간 계란김밥인데, 오랫동안 줄서서 먹어서인가, 약간 실망. 근처 슈퍼마켓에 파는 떡볶이 맛있다. 김밥은 1인 2줄밖에 주문이 안된다. 줄은 오래 섰는데 사는건 금방. 근처 슈퍼마켓 앞 나무 그늘 밑에서 떡볶이와 먹으니 맛있다. 김밥은 남기고 떡볶이는 국물까지 다 먹은건 안비밀.


걷기에 좋은 동네이지만 오토바이가 많이 다녀서 조금 위험했다. 입구에서는 길이 막히는 현상도 발생. ㅠ 근처에 계림과 내물왕릉, 첨성대, 월성을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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