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노동조합이 필요해2
현장실습을 하던 18살 소년이 제품 적재기에 목이 끼어 죽었다. 그가 사고를 당할 때에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딱 그 나이였다. 콜수를 채우지 못해 생을 마감한 소녀도, 안산 반월공단에서 투신한 소년도 모두 그 나이다. 구의역에서 19살의 김군이 먹지도 못한 컵라면을 두고 사고를 당해 세상에 떠날 때에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의 소지품 목록을 읽어주었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나의 학생들이 앉아있는 이 교실과 밥먹을 시간조차 없어 라면으로 때워야 했던 그 공간의 간극이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 또래의 학생들 앞에서 좀 더 이른 나이에 노동을 선택해야만 했던 한 지하철안전문 노동자가 남긴 소지품 목록을 읽어내려갔다. 다 읽고나서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침묵이 시간과 공간을 점령했다.
핀란드의 6월은 따뜻했다. 백야의 계절이었다. 헬싱키 하카니에미에는 눈에 띄는 원통형의 건물이 있다. 빈 가운데로 백야의 햇살이 마음껏 내리쬐고 있었다. 핀란드 사민당이 입주해있는 그 건물에는 핀란드서비스노동조합 PAM이 자리잡고 있다. PAM은 23만명의 조합원과 159개의 지부를 거느린 대규모노동조합이다. 판매업, 호텔 및 레스토랑의 노동자가 조합원의 대부분을 이룬다. 직업의 특성상 여성의 비율이 75%이며, 35%가 31세 이하이다. 핀란드 노동조합의 역사와 PAM의 역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동자로서, 핀란드인으로서 자부심이 깊게 베인 말투였다. 그저 부럽게 듣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쎄수는 PAM에서 직업훈련학교(우리의 경우 특성화고)학생과 관련해서 전담업무를 맡고 있는 상근자였다. PAM에는 17,000명의 학생조합원이 있다고 한다. 회비를 내지 않기 때문에 정식조합원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만 노동법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제공은 물론 인턴십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PAM에는 전문적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법률을 자문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전국적으로 159개의 지부들은 자체적으로 실업계학교에 방문해 수업을 진행한다. 노조원이 직접가서 수업을 진행하고 그 비용은 노조에서 제공한다. 산별협약, 노동법, 노조, 핀란드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한 강의들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익히고 예비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한다. 방학기간에는 알바생 권리홍보 등의 캠페인을 진행하다. 비교적 젊은층이 서비스직으로 진입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서비스노조인 PAM에서는 이런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한 것이다. 갑자기 울컥했다. 우리도 이런 교육을 학교에서 했다면 콜수를 채우지 못했다고 아빠에게 짧은 문자를 남기고 세상을 마감하는 소녀는 없었을 것이다.
PAM은 연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말했다. “연대없이는 PAM도 없다.” 책상 앞에 앉은 나의 학생들과 현장에서 땀흘리고 있는 실습생의 간극 앞에서 PAM이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향한 연대가 더욱 빛나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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