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원주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이다. 사위였던 시인 김지하가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시작하게 되자, 딸과 가까이 살기 위해 원주로 온 것이 어느 덧 30년을 훌쩍 넘어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곳도 원주땅이 되었다. ‘땅의 근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원주는, 어쩌면 그녀와 어떻게든 인연이 닿을 수 밖에 없었던 곳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원주를 사랑했다.
박경리문학공원은 원주시 단구동에 위치해있다. 그녀가 살던 옛집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토지의 주요무대를 배경으로 한 산책길이 있으며 박경리 문학의 집에서는 <토지>와 관련한 전시실과 함께 그녀 생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가 있다.
옛집의 경우에는, 미리 사전예약을 해야한다. 해설사와 함께 동행해야 관람을 할 수 있으며 내부의 몇 곳을 둘러볼 수 있다. 방대한 분량의 토지가 완성된 곳이기도 한 박경리 선생의 집필실을 비롯하여 거실과 손님방, 부엌을 둘러볼 수 있다. 생전에 성의껏 돌보았던 텃밭도 있다. 현관문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놀러온 손자들이 물장난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작은 수영장이라고 한다. 돌을 주워다가 심는 것 모두 박경리 선생이 손자들을 위해 직접하셨다고 한다. 손자들이 커서 더 이상 작은 수영장이 필요없게 되자 연못으로 바꾸셨다고 한다.
손님방의 옷장 위에는 그녀의 이니셜이 새겨진 캐리어가 있다. 소설<토지>의 배경은 한국을 넘어 간도, 러시아, 일본 등이지만 박경리 선생은 60이 넘어서야 겨우 한번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여행이 혹 그녀의 상상력을 방해할까봐 자제했던 것이다. 중국을 다녀오고 난 후, 그녀의 상상과 실제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 말하더라는. 방대한 독서량이 토지를 창조해낸 것이다. 문득 늘 여행을 목말라하는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단촐한 집필실에서는 그녀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생전에는 창문 곁에서 울어대는 고양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북까페에서는 다양한 도서를 빌려볼 수 있다. 신분증을 맡기고 책을 받고 2층에서 읽을 수 있다. 돌아갈 때에는 도서를 반납하고 신분증을 받으면 된다. 2층에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최희응 선생님이 교직에 몸담은 동안 수집한 자료라고 한다. 토지의 역사적 배경 중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해를 위해 상설전시 중이다.
전시실에서는 영상관람 및 토지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박경리의 그동안의 작품도 함께 엿볼 수 있다. <토지>가 워낙 유명해서 다른 작품들이 덜 유명하지만, 나는 박경리의 다른 소설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몇몇 산문은 소설보다도 더 강렬하다. 전시실에서는 박경리 선생의 사상도 엿볼 수 있다. 원주에서 사는 내내 길고양이를 돌보고 텃밭을 일구며 바느질을 하고, 흙을 빚는 노동을 하며 살았던 그녀 삶의 흔적을 쫓아간다. 내가 좋아했던 어느 산문에서의 글귀,
"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그 부산물인 문명을 서로 혼동해 정신적인 영역이 아닌 즉물적인 것만을 추구합니다. 자연은 인성을 풍요롭게하고 감성을 길러주는 교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연이 정복대상으로 바뀌었고 도전해서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 됐습니다. 오늘날 자연은 더 이상 물질이지 생명이 아닙니다. 흙 한줌, 나무 한 그루도 생명이고 나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 -1996년, 박경리
6.25전쟁 중 남편을 잃고 고향 통영으로 내려와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며 살아왔던 그녀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집이 도시개발계획으로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한국토지공사에서는 그녀의 집을 비롯한 일대를 공원부지로 정하여 지금의 모습과 같은 박경리문학공원을 조성했다. 그 후 그녀는 토지문화관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 후배 작가들을 위해 여전히 농사지으며 밥을 해주는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는 말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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