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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탈리아

폼페이 _ 재난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로마를 여행하는 내내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내가 이제는 여행을 좀 쉬어야 될 때가 왔다는 것이었다. 차고 넘치는 고대의 유적 앞에서 시큰둥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그동안 눈호강을 참 많이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러 곳을 여행하고 ‘세계문화유산’이라고 말하는 곳들의 입장권을 모으면서 모든 곳에서 감탄을 했다면 거짓말이다. 과거의 누군가의 숨결 따위, 늘 느꼈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유적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손에 꼽는다. 사실 대부분은 다리가 아프다고 느꼈던 적이 더 많았다. 입장료를 내고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시는 못 올지도 몰라서 욕심껏 ‘관람’을 채웠었다.




 

폼페이는 달랐다. 나는 정성을 다해 폼페이의 모습을 살폈다.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고대도시가 주는 시간의 초월성 때문은 아니었다. 내내 나를 쫓아다니면서 놀랍지 않느냐며 열심히 설명해대는 폼페이현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척 하기는 했지만 사실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작년 4월 16일 이후 내내 나를 따라다니는 그 사건 때문이었다. 오늘 날 오래된 유적 앞에서 오늘 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던 까닭에 폼페이가 달랐다.


티투스황제의 재위기간은 채 3년도 되지 않는다. 젊어서는 아버지였던 베스파시아누스의 황제의 전장에서 늘 함께했으며 베스파시아누스황제의 말년에는 공동통치를 하기도 했다. 티투스황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그의 나이 40세. 오랜기간 동안 황제를 준비했었기 때문일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통치는 탁월했다. 하지만 티투스황제가 통치하던 기간에는 재난이 끊기지 않았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폼페이가 잿더미 속으로 가라앉았고 다음 해인 80년에는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전염병이 돌았다. 통치하는 내내 재난과 함께였던 황제라니. 재난에 대처하는 황제의 자세는 오늘 날의 어떤 이를 떠올리게 한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자 그는 당장에 그 곳으로 달려가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한다.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나기 전까지 수도 로마가 아닌 남부에 머물면서 피해민들에 대한 지원과 복구에 총력을 다한다. 다음 해인 서기 80년,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남으로서 그는 다시 로마로 가서 지원과 복구사업에 열을 올린다. 81년에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재임기간동안 따라다녔던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 사재를 털기도 하였다. 재난수습의 대가. 티투스황제.

 

재난에 대처하는 로마관료의 모습 또한 다르지않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던 시기에 폼페이와 가까운 미세눔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함대의 함대장은 플리니우스였다. 이름이 같았던 조카와 구별을 하기위해 대플리니우스라고 불리우던 함대장은 학자이기도 했다. 미세눔에서 책을 집필하고 있을 때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내는 구름을 본 대플리니우스는 학자적인 호기심으로 작은 배를 준비해 직접 가까이 가서 신기한 현상을 관찰하려고 한다. 그 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폼페이 지역의 상황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였다. 그는 당장에 학자적 호기심을 버리고 함대를 준비한다. 편지를 보냈던 사람뿐만 아니라 폼페이에는 구할 사람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함대는 폼페이 지역으로 나아갔다. 해안에 가까워지자 화산폭발로 돌멩이들이 함대로 날아와 떨어지기도 했다.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함대장 플리니우스는 잠시 고민한 후 사람들을 구하기위해 정박을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죽었다. 화산이 뿜어내는 유독가스에 질식사했다.

 

 

세월을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오래 전 로마의 리더들이 보여준 모습에 괜히 질투 같은 마음도 생겨난다. 인재도 아닌 자연자해. 누구라도 어쩌지 못하는 그 자연재해 앞에서 그들의 황제와 관료가 보여준 모습은 오늘 날의 우리가 보아도 훌륭하지 않은가.

 

 

‘역사를 통해 배운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말은 아닌 것 같다. 역사를 읽고 외우지만 배우지 못한 자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배우지 못한 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국민들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폼페이는 그런 곳이었다. 2000년 전의 폼페이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복층의 건물에 화려한 벽화, 섬세한 청동조각상, 창녀촌을 보러가지 마시고 우리의 오늘을 보러 가시길. 티투스는 죽었다. 그렇게 3년 내내 재난수습에 매진하다가 죽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는 재난이 일어난 후 사라졌던 지도자와 구하러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관료들만 있을 뿐이다. 진실로 티투스는 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