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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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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열차 프롤로그 낭만이 있었다. 어릴 적에는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갈아타서 모스크바까지 간 후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가는 것이 꿈이었다. 어릴 적, 아빠는 내가 크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아직은 내가 덜 컸는지 그런 꿈이 쉬이 잡혀질 것 같지가 않다. 어쨌든 살아서 한번은 꼭 해보고 싶던 '시베리아횡단열차탑승'을 했다. 9,280km.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톡과 수도인 모스크바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긴 노선. 그 열차의 길이도 너무 길어서 세계에서 가장 긴 기차라고도 한다. 내가 탑승한 구간은 블라디보스톡 - 노보시비리스크 - 카자흐스탄 알마티 구간으로 1860년대 부터 1937년까지 극동지방(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했던 루트를 따..
도쿄의 작은박물관 -WMA(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2.8독립선언기념관 처음 도쿄에 갔을 때 야스쿠니 신사에간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일본이 기록하는, 기록하고 싶어하는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찬찬히 둘러보던 외국관광객들은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일본의 역사에 대해 잘 알게되었다는 감사의 인사. 전쟁에 쓰였던 잔혹한 무기들을 전시하고 귀여운 아기인형에 일본군인의 옷을 입혀 팔던 곳. 욱일승천기 모양의 초콜릿을 아무 거리낌없이 팔던 야스쿠니 신사의 전쟁박물은 나에게는 너무 끔찍한 곳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두번째 도쿄방문. 관광지는 영 흥미가 없어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 두 개의 작은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첫번째는 와세다대학 안에 있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이었다. 영어로는 women's active museum이다. 전세계 일본군'위안..
6월의 라플란드 6월의 라플란드 북구에 여름이 늦게온 탓에 호수수영은 어렵게 되었다. 산에서 얼음이 녹아 내린 물에 발을 담그니 머리끝까지 찌릿찌릿하다. 분명 베사는 물이 따뜻해졌다며 럭키라고 즐겁기 수영하라고 했는데.. 사우나에서 뜨겁게 달군 후 호수대신 바람에 몸을 말렸다. 여기 정말 좋다. 근 1년 만에 만난 마리아와 베사는 숙소 냉장고에 직접 담근 블루베리잼과 클라우드베리 잼을 넣어주었고 레오 녀석도 키가 훌쩍 자랐다. 이젠 제법 영어로 알아듣는다. 하늘도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산도 호수도 믿을 수 없을만큼 아름답고 평화롭다.
[핀란드 노동조합] 우리에겐 노동조합이 필요해 매해 개구리발톱만큼 오르던 최저임금이 2018년에는 17.6% 오를 예정이다. 눈에 띄게 오른 비율에 기뻤지만 씁쓸하기도 했다. 노동자의 권리가 약한 나라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최저임금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에 일희일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내가 여행했던 핀란에는 최저임금제도가 없다. 핀란드 뿐만 아니라 덴마크, 스웨덴 등 노동자의 권리가 강하고 노조가입률이 높은 북유럽 국가 대부분이 최저임금제가 없다. 핀란드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는 노동조합이다. 핀란드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67%로 세계에서도 높은 편에 속한다. 2015년,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가 공휴일 및 인건비 감축 내용을 담은 정부예산삭감안을 발표했다. 노조는 23년만에 총파업을 벌였다. 단 하루의 총파업에 정부가 예산삭감안 폐지를 선언했다...
문제는 난민이 아니야. 물건을 사러 들어갔던 하카니에미의 세컨핸드샵에 한 난민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종이컵을 손에 쥔 채 열심히 물건을 골랐다. 정적을 깨며 가게 주인이 그녀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예의를 차린 말이었지만 말투와 나가는 문을 가르키는 손가락에는 날이 서 있었다. 전쟁이나 재난 때문에 떠밀려온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이방인이었기에 덜컹했다. 그 손가락이 나를 향한 손가락은 아닐까. 옷을 고르던 난민여성은 그런 차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나갔다. 헤아려보니 10개월 만에 다시 찾은 핀란드였다. 채 1년도 안되었지만 거리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난민. 어디를 가든 중동 무슬림 국가에서 온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종이컵을 들고다니며 구걸하거나 빈 플라스틱병이나 캔을 주..
폼페이 _ 재난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로마를 여행하는 내내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내가 이제는 여행을 좀 쉬어야 될 때가 왔다는 것이었다. 차고 넘치는 고대의 유적 앞에서 시큰둥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그동안 눈호강을 참 많이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러 곳을 여행하고 ‘세계문화유산’이라고 말하는 곳들의 입장권을 모으면서 모든 곳에서 감탄을 했다면 거짓말이다. 과거의 누군가의 숨결 따위, 늘 느꼈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유적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손에 꼽는다. 사실 대부분은 다리가 아프다고 느꼈던 적이 더 많았다. 입장료를 내고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시는 못 올지도 몰라서 욕심껏 ‘관람’을 채웠었다. 폼페이는 달랐다. 나는 정성을 다해 폼페이의 모습을 살폈다.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고대도시..
핀란드 여행의 시작 주한핀란드대사관 이등서기관 헤이니 꼬르호넨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핀란드의 다양한 정책들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임산부박스’였다. 아기가 2살이 될 때까지 아기에게 필요한 용품들이 가득 찬 이 박스는 임신 4개월 전 임산부 클리닉 등 병원에서 진찰받은 ‘모든’ 임산부에게 지급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박스를 받기 위해 가난을 증명할 필요도, 부유하다고 해서 이 박스를 거부할 수도 없다. 이 박스는 핀란드의 보편복지를 보여주는 정책 중 하나이다. 이 박스에는 옷, 신발, 기저귀 등의 물질적인 것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의 출발선은 평등해야한다는 그들의 가치이다. 아! 부모를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고 말하는 어느 금수저의 이야기에 휘청하는 사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