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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뭘까요

밥과 나


이런 밥상을 마주할 때 내가 비로소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 밥상에 올라온 쌀은 얼마 전 여성농민회 언니네 텃밭에서 주문한 쌀이다. 밥 안에 들어있는 선비콩과 밀은 한살림생산자들의 땀이다. 된장국은 그제 언니네텃밭에서 주문한 된장으로 끓였다. 따로 육수를 내지 않아도 맛이 깊다. 된장국에는 올해 내가 용산텃밭에서 직접 키운 의성배추를 넣었다. 의성의 여성농민들이 나눈 토종씨앗이 서울에서도 잘 자라서 이렇게 내 밥상 위에 놓이게 되었다. 달고 맛있다. 된장을 보낸 여성농민이 보내 준 푸짐한 고추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밥 한 숟갈, 국 한 숟갈에 힘이 난다. 먹거리를 직접 생산해내지 못하는 도시생활자인 나에게 먹는 시간은 농부를 만나는 시간이다. 아, 도시생활자의 먹거리문화가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자급자족할 수 없더라도, 하루를 살아내기에 빠듯하더라도, 하루의 끝에 이런 밥상을 마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지나치게 편리한 도시에서는 농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천원짜리 햇반을 만들기 위해 어떤 수고로움이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은 마트의 관심 밖이다. 내가 집어든 햇반과 된장이 자연스레 농민을 착취하는 구조로 이어져도 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다.

내게 된장을 보내 준 여성농민생산자가 보낸 편지를 여러번 읽어보았다. 생산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지만 시골의 큰 농협슈퍼에서도 우리 된장이 진열되어 있지 않다는 말에 놀랐다. 2011년에 쓴 이 편지가 2018년까지 읽히는 것이 조금 슬퍼졌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데 농민들의 존재를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어제는 용산텃밭에서 토종콩을 수확했다. 애를 썼지만 그늘 밑이라 그런가 상자텃밭이라 그런가 아니면 나의 정성이 부족한건가, 수확량이 적다. 그래도 기뻤다. 이 콩을 잘 말려서 밥을 짓고 밥상 위에 올릴 생각에 차갑게 내리는 빗 속에서도 즐겁게 수확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만 농민들의 정성을 가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