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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독일

베를린여행 : 베를린다크투어 _ 베를린홀로코스트 메모리얼 & 쇼아기념관

​베를린의 중심부인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있다. 관처럼 생긴 2711개의 회색기둥이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 제2차대전 기간동안 유럽 전역에서 희생된 600만명의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는 공간이다. 추모의 공간이며 기억의 공간이며 반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2005년 미국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에 의해 설계된 이 메모리얼은 서로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로 배치되어있다. 콘트리트의 모습이 마치 관처럼 보인다. 바닥에 경사면이 있고 높은 콘트리트기둥을 지날 때에는 옆은 보이지 않고 하늘만 보이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지는 곳이다. 분명 낮은 곳에서 출발했는데 어느샌가 어디즈음인지도 모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되고 회색기둥에 압도 당하게 된다. 그렇게 압도당하게 되는 순간 느끼는 불편함이 피터 아이젠만이 관람객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 메모리얼의 지하에는 방문자센터인 쇼아기념관이 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전시가 있는데 첫번째 베를린 방문 때에는 줄이 너무 길어서 들어가보지 못했다가 두번째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20분 정도 줄을 서고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엄숙해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안전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늘 정해진 인원만 관람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앞에는 늘 줄이 있는데 줄이 길든 짧든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거쳐 간단한 보안검색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프리모 레비의 글귀.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프리모레비는 전쟁이 끝나고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알리고 기억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1987년 돌연 자살을 하는데, 가장 혹독한 폭력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그의 자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던졌다. 


"이것은 일어난 일이고, 또 일어날 수 있다. 이 것이 우리가 증언해야 하는 핵심이다."​


프리모레비의 말을 거쳐 전시는 시작된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유대인에 대한 차별정책이 나치에 어떻게 진화하고 공고히 다져졌는지 설명이 있다.  나치는 유대인 혐오 등 프로파간다를 통해 정권을 잡기 시작했고 1935년 뉘른베르크법을 통해 법률적으로 차별을 양산했다. 1938년, 수정의 밤 사건으로 유대인 혐오는 공적인 것으로 그 성격이 명확해졌다. 처음에는 비밀리에 수용소를 짓고 유대인학살실험을 했지만 이후에는 공공연하게 범죄를 자행했다. 



이 전시의 가장 마지막에는 6명의 돌아오지 못한 유대인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냥 '유대인'이 아니라 이름이 있고 삶이 있었던 '인간'의 이야기.


이 곳에 있는 바닥의 판넬에서는 유대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하나하나 읽다보면 울컥해지는 감정이 올라온다.


" 1944년 6월 19일

우리는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소환장을 받았다. 그들은 일터로 보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이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


1933년 초, 베를린에는 160,000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중 90,000은 이주해갔으며 55,000명은 살해당했고 7,000명은 자살했다. 오직 8,000명의 유대인만이 살아남아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곳의 판넬에는 가족사진이 있다. 유럽의 어떤 곳에 살았으며 가족 구성원 각각 무슨 일은 했는지,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고 이후 어느 수용소로 가게 되었는지 그래서 살아남은 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비극적으로 가족구성원 중 살아남은 사람은 소수이다.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


어느 수용소 입구의 간판. 수용소는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전쟁물자를 만들기 위한 곳이기도 했다. 많은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노동을 했으며 노동력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아동은 가장 먼저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이 방문자센터에서는 전 세계의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기념관이나 기념비, 그리고 강제수용소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사진은 부다페스트의 기념물이다. 강가에 놓인 수많은 주인없는 신발들. 제2차대전당시 독일군들이 유대인을 이곳 강에서 학살했다고 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문자센터를 나서니 또 커다란 회색기둥들이 압박한다. 날이 어두워지니 좀 무서워졌다.


이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은 독일의회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국가적으로 만든 곳이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을 국가적 과제로 채택하기까지 많은 시민들의 활동이 있었다고 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매일같이 들여다보기 위해 도시의 중심부에 넓은 공간을 만든 독일사람들이 조금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두 번의 베를린 여행을 하면서 꼭 다녀간 곳이 이곳이었는데 올 때마다 학생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한국에서도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더러 있는데 접근이 쉽지 않았던게 나로서는 늘 아쉬웠다. 추모하는 공간이 어때야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방문자센터는 관람시간이 따로 있지만 홀로코스트메모리얼은 24시간 모두에게 열려있다.

음주, 고성방가, 자전거출입, 조형물 위에 올라가는 등의 행위는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곳에 어울리는 예의가 따로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



구글주소링크

https://www.google.com/maps/place/Memorial+to+the+Murdered+Jews+of+Europe/@52.5143481,13.3796837,256m/data=!3m1!1e3!4m5!3m4!1s0x47a851c607196a5b:0x1434a79012ee5bc8!8m2!3d52.5139475!4d13.3787124?hl=ko


주소

Cora-Berliner-Strase 1


방문자센터 입장은 무료

4월-9월 :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

10월-3월 :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

매주 월요일은 휴무 / 45분전에는 입장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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