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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독일

베를린여행 : 신티와 로마, 홀로코스트의 또다른 피해자를 추모하는 곳을 찾아서._집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독일 국회의사당 분데스탁 옆에는 신티와 로마를 추모하는 공간이 있다. 신티와 로마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집시'이다. 집시라는 표현의 어원은 이집트유랑민을 가르키지만 사실과 조금 거리가 있다. 그들은 로마시대에, 파키스탄이나 인도 등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며 로마시대에 왔기 때문에 스스로를 로마라고 부른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로마의 경우에는 스스로를 신티라고도 부른다. 집시라는 용어는 차별과 혐오를 담고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불려지길 원하는 로마, 혹은 신티라는 말을 쓰는 것이 맞다.


지금 우리가 로마와 신티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처럼, (예를 들면 좀도둑이나 유랑민) 1930년대 독일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별과 혐오로 가득했다. 유대인처럼, 로마와 신티도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되었다.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는 다양한 공간이 있는데 독일 국회의사당 옆 신티와 로마 메모리얼도 그 중 하나이다. 사람이 붐비는 브란덴부르크문과 독일국회의사당 사이에 있는데 이 공간만큼은 너무 고요하다. 브란데부르크 문 옆, 티어가르텐 공원 앞 유대인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600만 유대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라면 이 곳은 신티와 로마를 위한 추모공간이다. 유대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생긴 후 그곳은 유대인을 추모하는 곳이니 다른 희생자에 대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유대인으로 대표되긴 하지만 다른 소수민족과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집단 역시 희생자였다. 이 공간은 그 활발한 논의의 결과인 셈이다.  

나치 정권하에서 학살당한 신티와 로마의 메모리얼.

우측으로는 독일어와 영어로 이들이 어떻게 박해받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신티와 로마는 유대인보다 훨씬 앞서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신티와 로마가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다음에도, 강제수용소의 지역주민들은 위생과 안전을 이유로 그 곳에 이주된 로마와 신티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해달라고 정부에 불만을 표출했다고도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통해, 신티와 로마가 당시 얼마큼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세계제2차대전 중 희생된 로마와 신티는 50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이것 역시 추정치 일 뿐이며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로마와 신티가 어떻게 박해받았는지를 설명하는 유리판.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들에 대한 범죄가 널리 알려진 것에 반해 신티와 로마 희생자가 희생자로 인정받게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동그란 연못이 있다. 이 원은 '평등'을 의미하고 원 안의 물은 '눈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2012년, 유럽 전역에서 희생된 50만명의 로마와 신티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스라엘의 조각가 대니 카라반이 설계했다고 한다. 연못 가운데에는 세모 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당시 나치에 의해 투옥된 로마와 신티들의 죄수복에 붙어있던 삼각형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바닥에는 비문이 있는데 이 비문은 이탈리아 시인 산티노 스페닐리의 시 "아우슈비츠" 라고 한다.


"Sunken in face / extinguished eyes / cold lips / silence / a torn heart / without breath / without words / no tears".


이 공간을 설계한 대니 카라반은 유대인이며, 세계제2차대전 동안 가족들 중 일부가 희생당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평생에 걸쳐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알리는데 전념하고 있다.


모든 것을 빼앗긴 공간. 이름도 없고, 말도, 비석도 없는 공간. 오직 눈물과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2012년, 이 공간이 로마와 신티를 추모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모두에게 열렸지만 여전히 신티와 로마는 우익의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유럽 전역에서 차별받고 있다. 심지어 유럽을 여행하는 관광객인 우리마저도 신티와 로마가 국가 없이 그들의 문화를 지키며 유랑생활을 하게 된 역사적인 이해 없이 범죄의 가해자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 공간 앞에서 한 무리의 로마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동 장애인을 위한 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서명을 받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우리에게 사정했다. 서명을 하고 나면 손으로 교묘하게 가리고 있던 부분을 보여주는데, 후원금의 금액이 적혀있고 서명을 했으니 우리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지나가던 독일 남성은 곤란한 우리에게 와서 그 여성의 무리를 내쫓으며, 그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무시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베를린 곳곳에는 그런 서명용지를 들고 다니며 후원금을 모금하는 것은 불법이니 응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유럽의 인권수준은 산티와 로마를 대하는 수준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교육과 복지, 기본적인 주거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안전한 사회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유럽사회의 과제이다. 그에 앞서, 그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지만.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에서, 그들이 자유로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