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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독일

베를린여행 : 베를린장벽과 분단의 흔적이 남아있는 베를린장벽추모지공원

베를린을 여행한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 구 동독의 베를린장벽이 놓여져있던 흔적이 남아있는 베를린장벽추모지공원이다. 마우어파트에서부터 시작해 베나우어 거리의 꽤 긴 구간에서 베를린장벽의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4개국에 의해 분할당하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게 분할된 지역과 소련에게 분할된 지역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고, 지리적인 중요성 때문에 베를린 역시 동독의 한 가운데서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분단된다. 많은 동베를린의 지식인들과 주민들이 서베를린으로의 탈출을 감행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동독은 서베를린을 감싸는 베를린장벽을 만든다. 

옛 동독구역의 건물에 이렇게 사진 전시가 되어있다. 걸으면서 이 시대의 다양한 사진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이 곳은 마우어파크 앞 건물이다.

1961년 철조망으로 베를린 장벽을 세우는 모습.

1974년 가로등이 환하게 비춰진 베를린 장벽.

1982년 걷고 있는 여성 뒤로 보이는 단단한 베를린 장벽.

1989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


장벽이 설치된 곳을 따라 바닥에는 쇠로 된 선들이 그려져 있다. 


곳곳에 이렇게 다양한 설명도 만날 수 있다. 주로 이 곳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탈출을 위한 터널.

동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서베를린으로 탈출하기 위해 가정집 지하에 땅굴을 만들어 서베를린으로 이어지는 탈출구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터널도 한두개가 아니라 길을 걷다 무심코 바닥을 보면 이런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당시에 동독에는 수십개의 탈출을 위한 터널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터널을 파고 탈출했지만 절반에이 넘는 사람들이 탈출해 실패해 체포되었다. 터널을 통해 탈출을 시도한 사람 중 4명은 그 과정에서 사망하기도 했다.  

유명한 사진.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이 결정되고 철조망이 쳐지기 시작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베나우어거리에서 경비를 서던 동베를린의 군인 한스 콘라트 슈만이다. 서베를린 지역의 서독 군인들이 넘어오라고 말했고, 그는 철조망을 뛰어 서베를린으로 넘어왔다. 

베를린장벽의 시작이면서 냉정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지금은 이렇게 장벽이 설치되었곳 사이로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넘어야했던 장벽. 3.6미터의 높이에 길이가 45km 되었던 콘크리트 장벽은 이제 흔적만 남아있다.



베를린 장벽의 다른 모습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전 서둘러 탈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961년을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단단하게 자리잡았던 베를린 장벽. 사진이 붙어있거나 그려져 있는 곳은 대부분 동독 지역이다. 베를린 장벽에 세워진 곳을 죽음의 띠라고도 하는데 당시 장벽을 세우기 위해 많은 집들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강제이주 시켰다. 우리가 걷는 지역이 그런 지역이고, 남아있는 집들은 장벽과 가장 가까운 집들이다.

원래는 창이 나있던 집들인데, 창문을 통한 탈출 등이 감행되면서 창문까지 아예 막아버려 벽처럼 보이게 되었다.

베를린장벽추모지공원에는 당시 베를린장벽을 경계로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볼 수 있다. 그 중 너무 슬펐던 사진. ㅠ 서독에 살던 딸이 결혼했지만 동독에 살던 부모님은 결혼에 참석할 수 없었고 이렇게 잠시, 멀리서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걷다가 만나게 되는 화해의 교회.

원래 이 자리에는 다른 교회가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면서 황폐화되기 시작하고 동독 정부는 보안을 이유로 교회를 아예 철거해버렸다.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이 곳에 화해의 교회를 다시 세웠다. 이 교회를 지을 때 벽구조물에 이전 교회의 잔해를 넣어 지었다고 한다. 

아직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모습. 저 벽 너머로 탈출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감시탑과 벙커 등이 있다. 이 곳의 모습은 장벽 맞은편 도큐메이션 센터의 전망대에 오르면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도큐메이션센터.

베를린 장벽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고 관람은 무료이다 4층 전망대로 올라가면 베를린장벽추모지공원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베를린 장벽을 탈출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당시 베를린 장벽 주위에는 탈출자의 흔적을 쉽게 알아차리기 위해 모래나 자갈로 길을 만들기도 하고 곳곳마다 감시탑과 서치라이트로 감시했다고 한다. 

이 비석 옆에는 기억의 창이라고 불리는 조형물이 있다. 그리고 128명의 사진도 붙어있다. 사진 아래에는 이름과 생년월일도 적혀져있는데 너무 어린 나이의 소년도 있다. 어떤 사람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9개월 전에 탈출하다가 총상으로 사망했다. 경비를 서던 군인들이 사격을 가하던 중 잘못 발사된 탄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동독 군인도 있다. 


분단의 시대를 살아낸 베를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고, 지금의 베를린 사람들이 그 기억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분단의 상징이 평화를 기리는 곳으로 변한 이 곳에서,

우리나라의 분단의 상징도 어떻게 변하게 될지 상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