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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네팔&히말라야

ABC트래킹 6일차 : 마차푸차레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2012111일 날씨 맑음 완전 맑음

 

구간 : MBC - ABC - 데우랄리 - 도반

 

밤새 잠 한 숨 자지 못한 것 같다. 너무 춥기도 했고 고산병 때문인지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도 5시 쯤 일어나니 한결 나아졌다. 새벽은 어둡고 춥다. 우리는 ABC로 전진했다. 초반 페이스는 좋았다. 그런데 소정이가 고산병으로 내려가고 그 후에 나 역시 자꾸 토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괴로웠다. 날씨는 너무 추워서 손과 발을 다 얼게 만들고 이미 선두랑은 한참이나 떨어졌다.

 

내려가고 싶었다. 추웠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힘들었다.

 

손이 너무 시려워서 스틱을 잡을 힘도 없어서 스틱을 손가락에 끼우고 질질 끌어서 갔다. 행여라도 스틱이 얼음벽에 부딪치면 스틱을 통해 그 진동이 내 손에 전해져왔는데 너무 아팠다. 손가락이 깨질 것만 같았다.

 

힘들었지만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과 별과 달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 어떤 '밝음' 보다도 더 빛이 났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이 길이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자꾸 토할 것만 같아서 계속 쉬어야만 했다. 1시간 더 남았다는 표지석을 보고 절망했지만 꾸준히 걸었다. 걷다가 토할 것 같아서 쭈그려 앉고 또 걷다가 토할 것 같아서 쭈그려 앉아버리고.

 

 

 

좁은 눈길 때문 걷는 것이 더 힘들었다. 어느 덧 해가 뜨고 저 멀리 ABC에 태양이 비추자 설산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변했다. 빨리 가서 저 광경을 보아야 하는데 발에 힘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너무 지쳐있었따. 정말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때 저멀리 ABC가 보였다. 엽서에서 보던 것과 같은가, 다른가 한참을 보다가 ABC가 맞을 거라며 (사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확신하며 힘들게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날아갈 그 거리가 왜 그렇게 길고 험하기만 한지. 그냥 좁은 눈길일 뿐인데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험난한 길이었다.

 

짜증도 났다. 그렇지만 수도 없이 '할 수 있다'를 외치며 갔고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ABC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을 찾을 겨를도 없이 난 무조건 거기 있던 아저씨가 따뜻하다고 알려준 롯지에 들어가 짐을 던져버렸다. 짐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의 비상약품이 다 내 배낭에 들어있던 까닭에 나는 오면서 수도 없이 배낭을 벗어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혹시나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꾸역꾸역 들고 왔다. 스틱을 갖고 가는 것도 힘들어서 그냥 길에 꽂아둔 후에 내려 갈 때 가져갈까 100번은 생각했는데 가지엉클이 빌려준 거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내 것이었으면 그냥 버리고 왔을 듯 싶다. 어쨌든 나는 롯지에 내 배낭을 내동댕이 치고 난로를 피운 책상 안으로 들어가 다리를 집어넣고 손도 집어넣었다. 빨갛게 부은 손이 너무 아팠다. 손톱까지 진한 보라색이었다. 꼭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추웠다. 아까부터 스틱을 통해 작은 충격이 올 때마다 손가락이 찌릿찌릿했었다. 너무 추워서 정말 딱 죽을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따뜻한 곳에 자리를 내어주어서 몸을 녹였다. 몸이 떨렸다.

 

마늘수프를 먹고 나는 나아졌다. 추워서 나가기 싫었지만 안나푸르나를 보러갔다.

 

 

 

 

 

 

 

 

안나푸르나.

풍요의 산.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았찌만 마음으로 수도 없이 되뇌이며 오고자 했던 곳.

호주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번 여행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만든 산.

가까워보였다.

금방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코리안루트를 만들고자 했다가 실패해 묻힌 그 절벽. 눈으로 덮힌 그 절벽이 바로 내 앞에 있따. 가도가도 끝이 없다는 그 절벽이 손만 뻗으면 만져질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한발 한발 내 딛으면 금방이라도 갈 수 있을 것 처럼 가까워 보였따.

 

제대로 사진 찍을 틈도 없이 나는 몇몇 아이들의 인터뷰 영상을 따고 내려와야만 했다.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는데 벌써 내려가다니. 아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려오는 내내 사방으로 둘러쌓여진 높은 산들이 정말 멋있어서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었다. 새벽에는 내가 이 산속에 둘러쌓여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는데 해가 밝으니 눈을 어디에 두든 엽서사진이 따로 없었다. 단지 이 멋진 광경을 위해 얼마나 바라고 바랬던가. 행복했다. 너무 좋았다. 내려가고 싶지 않았따. 그래도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가다보니 마차푸차레가 우뚝 솟아있었다. 절대 사람이 오르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은 모습으로 날카로운 꼬리로 구름을 찌르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나푸르나에 남겨두고 내려오는 내내 나는 계속 넘어졌다. 이제까지 살면서 넘어졌던 것보다 히말라야에서 넘어진 횟수가 더 많을 것이다! 너무 많이 넘어져서 울고 싶었다. '왜 자꾸 나는 넘어질까'에 대해서 생각했다.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긴데 그 때는 정말이지 너무 많이 넘어져서 내가 넘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걷다가 넘어지고 일어났는데 또 넘어지고. 진짜 미친듯이 넘어졌다. 뭐 할 겨를도 없이 그냥 이유없이 넘어졌다. 왜왜왜왜왜왜왜!!!!!!!!!!!!!!!!!!!!!!!!!!!!!!!!!!!!!!!!! 넘어지고 싶지 않다고!!!!!!!!!!!!! ㅠㅠ 결국 가지 엉클이 자신이 꼈던 아이젠 한 짝을 벗어서 내 발에 신겨주었다. 가지엉클한테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그러다가 아파버렸다. 힘겹게 도반까지 오는데 날이 어두워져서 헤드랜턴을 키고 와야만 했다.

 

감기몸살이 났다. 그냥 쉬고만 싶다. 하루 동안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간 느낌이다.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따가 심장이 터질 듯이 행복했고 울고 싶을 정도로 짜증나게 계속 넘어졌던 하루.

 

어쨋든 나는 ABC에 왔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