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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호주

호주여행 : 퍼스에서 캥거루 만나기

호주에 오기 전 내가 상상했던 호주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야생'이었다. 집 밖 공원에 나가면 언제나 귀여운 캥거루가 아기 캥거루를 주머니에 차고 뛰어다니는 그런. 이건 완전히 환상이었다. 나는 지금 호주 서부의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도시, '퍼스'에 살고 있지만 오피스워크 (자주가는 큰 문구점)에 갈 때마다 화단의 모래가 고운 사막모래처럼 보인다는 사실만 빼면 내가 사막에 건설된 도시에 살고 있다는 점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다. 

여기는 완전히 도시이다. 

내가 상상했던 '오지(奧地, the wild)'가 아니라 그냥 오지(Aussie)일 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내가 자라왔던 우리 동네보다도 훨씬 더 발달되고 차도 더 많고 높은 건물도 더 많은, 사람조차도 훨씬 더 많은 그런 곳이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신나는 오지(奧地, the wild)생활을 기대했지만 나에게는 한국보다 더 치열하고 바쁜 그렇지만 별 의미없고 생산적이지도 않은 그냥 오지(Aussie)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도 길가에 큰 나무들이 많다는 것과 집 앞 공원에 앵무새가 산다는 점,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예쁜 새들도 많고 에버리진이 소리지르고 뭐 이런 것은 크게 생소한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집 앞 공원에 살고 있을거라고 굳게 믿었던 캥거루를 근 한 달동안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가 캥거루를 직접 만나러 가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물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뒤진 후에야 퍼스에서 야생캥거루들이 서식하고 있는 공원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는 얀쳅국립공원 (Yanchep)인데 퍼스에서 51km, 1시간 정도 떨어져있고 하루에 버스가 한 대 밖에 없어서 패스- 


두번째는 피날루메모리얼파크 (Pinnaloo memorial park)였다. 퍼스 역에서 몇 정거장 하지 않는 Whitford 역에서도 10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고 해서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퍼스 역에서 준달럽라인을 따라 4정거장이었던가, 어쨌든 조금만 가면 Whitford 역이 나오는데 그 곳에 내려서 오른쪽으로 나간 후 다리를 건너 그냥 쭉 가다보면 금방 나온다.

 

 

 

 

  사실 그냥 호주에 흔하디 흔한 공원인 줄 알았는데 이 곳은 조금 다른 곳이었다. Memorial Park. 누군가를 기억하는 그런 공원이었다. 알고보니 사람들은 이미 하늘로 떠난 자신들의 친구나 가족이 생각날 때면 찾는 그런 곳인데, 돌 하나하나 또는 나무 한 그루마다 어떤 사람들의 친구나 가족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이미 하늘로 떠난 사람이 그리울 때 이 곳에 오면 조금이나마 슬픔을 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무덤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 가면 슬프고 그리운 생각이 더 날텐데, 이 곳은 공원처럼 예쁘게 꾸며놓아서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동시에 한국에도 이런 것을 만들고 싶었다)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슬픈감정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슬프지않게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도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이지만 나의 슬픈감정 때문에 기쁘게 떠나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에 와서 예쁘고 아기자기한 풍경들을 보면서 울면서가 아니라 웃으면서 이미 떠난 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을 듯 싶었다.

 

 

  

어쨌든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 속으로 불러주고는 하늘에서도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캥거루를 찾아나섰다. ㅋㅋㅋ 공원 안 쪽으로 조금 깊숙히 들어가서야 드디어 캥거루를 만날 수 있었다. 낯선 사람이 오는데도 캥거루들을 자기 할 일에 바빴다. 짧은 앞발로 등을 긁고, 풀을 뜯어먹고, 깡총깡촐 뛰어다니고! 진짜 야생캥거루를 만난 것이다! 사실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야생캥거루를 만났다!!!!

   

 이녀석들, 자세히 보니 무리지어서 다니는데 한 무리당 수컷은 한 마리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집에와서 폭풍검색을 해보았더니 역시 본대로 캥거루는 일부다처제였던 것이었다. 아니, 이놈의 캥거루가!

 


 

긴 꼬리가 참 튼튼하게 보였고 특히 우람한 근육질의 몸매 때문인지 가까이 다가갔다간 훅 맞을 것 같아서 무서워도 가까이 가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이렇게나마 야생캥거루를 보고나니 진짜 호주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퍼스에서 멀지도 않고 이렇게 쉽게 올 수 있었는데! 그 것도 동물원처럼 입장료도 내지 않고!

사실 캥거루보다는 잘 꾸며진 메모리얼파크에 더 마음이 간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모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어쨌든 야생캥거루 만나기 미션 클리어 :)